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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T Excellence

[기획취재]미래의 과학자들 자전거에 푹 빠지다

  • 김효정
  • 등록일 : 2009.03.30
  • 조회수 : 4291

 



                         



 



광주과기원 전교생 80% 학교서 제공한 자전거 타



“주차 경쟁할 필요없고 실험실 스트레스도 풀려”



 









광주광역시 오룡동 GIST(광주과학기술원)에서는 아침마다 자전거 수백 대가 캠퍼스 서쪽 끝 기숙사 단지에서 캠퍼스 곳곳에 흩어진 강의실과 실험실을 향해 경쾌하게 달려간다.





1995년 개원한 GIST는 전국의 이공계 수재들이 모인 석·박사과정 연구·교육기관이다. 전교생 918명 중 총 882명이 기숙사 8개 동에 나뉘어 산다. 수업 시작은 오전 9시. 끝나는 시간은 따로 없다. 학생 대부분이 실험실에서 새벽까지 공부하기 때문이다.





이 학교 신입생이 맨 처음 듣는 공지사항 중 하나는 "자전거 타 가라"는 것이다. GIST는 2007년부터 전교생에게 학교 이름과 자전거 번호가 새겨진 시가 11만~13만원짜리 자전거를 나눠준다. 남학생은 파란색, 여학생은 분홍색이다. 보증금 2만원을 내는 게 유일한 조건이다. 이 돈은 졸업할 때 자전거를 반납하면 돌려준다. 이공계 특성상 남녀 비율이 8대2라서, 파란색 자전거가 분홍색 자전거보다 월등히 많다.





캠퍼스(50만㎡·약 15만평)는 가로 920m, 세로 540m의 직사각형이다. 학교 측은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이 보이는 아담한 캠퍼스라서, 환경과 안전을 고려할 때 셔틀버스 도입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초대 원장인 하두봉(78) 박사도 "매연과 소음을 줄여야 쾌적한 연구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자전거를 적극 권장했다. 덕분에 개원할 때부터 인도(人道)와 나란히 폭 1m의 자전거 도로가 1.6㎞에 걸쳐 조성됐다. 이곳 교내 주차장(1300대 수용)은 평일에도 반 이상 차는 일이 드물다. 주차 전쟁이 벌어지는 다른 대학 캠퍼스와는 사뭇 다르다.





자전거 거치대마다 똑같은 자전거 수십 대가 늘어선 탓에, 학생들이 자전거 번호를 일일이 들여다 보며 자기 자전거를 찾아 헤매기도 한다. 26일 기숙사 앞에서 자신의 자전거를 찾던 강민수(여·26·환경공학과)씨는 "새벽에 실험실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 뒤 아침에 어디 뒀는지 헷갈리곤 한다"고 했다.





25일 밤 11시쯤 양혜민(여·24·정보통신공학과)씨는 기숙사 앞에 자전거를 세운 뒤 자전거 앞쪽에 달린 바구니에서 우유, 아침식사용 시리얼, 옷장용 습기 제거제 등을 꺼냈다. 양씨는 "학교에서 700~800m 떨어진 대형마트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주말엔 실험실 동료들끼리 자전거로 15분 걸리는 영화관까지 다녀온다"고 했다.





26일 오전 9시쯤 베트남 유학생 느엉(여·26·환경공학과)씨가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분홍색 자전거를 타고 실험실로 등교했다. 느엉씨는 "작년 9월 입학할 때 모교(하노이 교육대학) 캠퍼스만 생각하고 "자전거를 신청하라"는 말을 흘려 들었다"고 했다. ""충분히 걸어 다니겠지" 싶었는데 실험과 수업에 쫓기다 보니 1~2분이 아까웠어요. 세탁기 차지하려면 빨리 달려가야 하고요. 보름 만에 자전거를 받았어요."





학생들은 자전거를 타고 서늘한 밤 공기와 청량한 아침 안개를 가른다. 26일 오전 8시쯤, 김영애(여·26·환경공학과)씨는 기숙사에서 실험실로 달렸다. 새벽 4시까지 실험을 한 뒤 잠깐 눈을 붙이고 실험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김씨는 "졸업 논문 준비에 진로 고민까지 스트레스가 많다"며 "자전거로 캠퍼스를 돌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고 했다.





자전거가 맺어준 캠퍼스 커플도 많다. 작년 4월, 밤늦게 실험을 마친 여찬일(26·정보통신공학과)씨는 1인용 남학생 자전거 대신 2인용인 여학생 자전거에 탔다. "같은 과 후배"이던 여자친구를 뒷좌석에 태우고, 직접 페달을 밟아 학교 근처 집까지 데려다 줬다. "그 뒤 매일 자전거로 바래다 줬어요. 처음엔 뒤에서 벨트만 살짝 잡던 여자친구가 나중엔 어깨를 잡았고, 지금은 허리를 두 손으로 꽉 감고 타죠."





GIST는 교수들에게도 희망자에 한해 자전거를 나눠준다. 교수 98명 중 16명이 지급받았다. 이 학교 자전거 수백 대 가운데 최고의 "명물"은 환경공학과 조재원(46) 교수의 이른바 "삼순이 자전거"다. TV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나온, 바구니 달린 연두색 여성용 자전거다. 휴대전화도 안 쓰고 어지간하면 차도 몰지 않는 조 교수는 "여성용 자전거라 아내가 "창피하니까 타지 말라"고 한다"며 웃었다.





GIST 학사과정개설위원장 이관행(56) 교수는 "내년에 신설되는 학사과정 입학생 100명에게도 자전거를 줄 계획"이라며 "자전거는 친환경 마인드를 지닌 공학도 육성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2009.3.30  조선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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