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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소장 과학칼럼(중앙일보3월3일자)-빛지문

  • 임성훈
  • 등록일 : 2007.03.05
  • 조회수 : 2513

중앙일보 2007.3.3(토)일자에 실린 이종민 소장님의 과학칼럼 원문을 아래에 게재합니다. 


[중앙일보 과학칼럼] 극미량을 탐지하는 빛 지문


이종민 광주과학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소장 겸 신소재공학과 교수

 

봄이 왔다. 대지를 촉촉이 적신 봄비가 봄을 재촉하는 듯하다. 그런데, 봄바람을 타고 오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도 있다. 중국의 사막에서 날아오는 황사가 그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대기오염 농도가 일본이나 태평양 지역의 40배나 된다고 하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황사에는 눈에 들어가거나 호흡을 통해 기관지로 들어가면 병을 일으키는 미세 먼지와 세균들이 섞여 있다. 또한 아주 작은 양이지만 우리 몸에 해로운 중금속 원소들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오염물질 농도를 측정할 때 ppm, ppb, ppt라는 단위를 흔히 사용한다. 예를 들어 중금속 오염 농도가 1 ppb(part per billion)라는 것은 10억 개의 입자 중에 1개의 중금속 원소가 포함돼 있음을 뜻한다. 그럼 이렇게 아주 작은 양의 원소들을 어떻게 탐지해 낼 수 있을까?


원자나 분자에 레이저 빛을 쪼이면 종류에 따라 고유한 파장의 빛들을 되 낸다. 사람마다 다른 지문을 가지고 있듯이, 원자나 분자도 다른 원자나 분자들과 구별되는 각각의 "빛 지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빛 지문은 원자나 분자가 하나만 있더라도 분명히 나타난다. 따라서 물질의 양이 아무리 적더라도, 그 물질에 레이저 빛을 쬐어 얻어진 빛 지문들은 그 물질이 어떤 원자나 분자로 이뤄져 있으며, 무엇인지도 알려준다. 그래서 드넓은 대기 공간에 퍼져 있는 극미량의 원소를 찾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보자. 지난해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보도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 동해에 인접한 함경북도 풍계리 근방에서 발생한 인공폭발에 의한 지진파 관측이 그 근거였다. 핵실험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몇 가지의 물증이 더 필요하다. 실험지역의 함몰 사진이나 방사능 물질 검출 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핵실험 때만 나오는 특정 방사능 물질의 검출은 핵실험을 확인하는 결정적인 증거다. 핵 과학자들은 북한 핵실험 때 공기 중에 나온 방사능 물질은 총 1g 이하이며, 폭발 후 넓은 하늘로 퍼진 방사능 물질의 대기 중 농도는 극히 낮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미국이 북한 핵실험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마도 동해 부근 대기를 채취해 이 극미량의 방사능 원소를 가장 최신 기술인 레이저 빛으로 탐지, 분석하는 방법을 이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빛으로 원자나 분자의 빛 지문을 연구하는 학문을 "분광학(分光學)"이라고 한다. 분광학은 자연을 탐구하는 데서부터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의료진단이나 환경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된다. 환자가 내뿜는 숨 속에 섞여 있는 아주 작은 양의 질병 관련 기체 성분을 분석해 환자의 건강상태를 진단하거나, 여러 가지 공해 때문에 우리 몸속에 침투해 누적돼 있는 극미량의 각종 유독성분들의 밀도를 측정할 수 있다. 또한 물체의 온도를 재는 데도 이용된다. 온도에 따라 원자나 분자가 내놓는 빛 지문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정한 온도에서 원자들이 내는 빛 지문을 "흑체복사"라고 한다. 1989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우주로부터 오는 태양빛을 포함한 모든 빛들을 조사하기 위해 "COBE"라는 위성을 발사했다. 2006년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NASA의 존 매서 박사와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의 조지 스뮤트 박사는 COBE가 보내온 "우주의 빛 지문"인 우주흑체복사를 정밀분석해 우주의 온도가 2.725 K(K는 절대온도 단위, 약 섭씨 영하 271.3 도)이며, 이 온도에 아주 미세한 변화가 있음을 밝혀냈다. 이것은 38만 년 전의 우주의 모습을 찍은 것이며, 거대 폭발에 의해 우주가 탄생했다는 소위 "빅뱅"이론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가 됐다.


이처럼 빛 지문을 이용하면 아주 작은 양의 물질이라도 탐지해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시간이 아무리 흘렀어도 아주 작은 흔적만 남아 있다면 빛 지문은 시간을 거슬러 그 당시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준다. 우리의 오감으로는 흔적조차 알 수 없는 것을 감지해 내는 빛. 이 빛 앞에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콘텐츠담당 : 대외협력팀(T.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