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이드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미디어센터

A multimedia mosaic of moments at GIST

GIST Excellence

이종민소장 과학칼럼(중앙일보3월10일자)-빛을 내는 가로수

  • 임성훈
  • 등록일 : 2007.03.10
  • 조회수 : 3449

2007년3월10일(토)자 중앙일보 30면(오피니언)에 이종민 교수의 과학칼럼이 실렸습니다. 원문을 아래에 게재합니다.  

 

[과학칼럼] 스스로 빛을 내는 가로수

이종민 광주과학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소 소장 
 

어린 시절 여름이면 시골에서 별처럼 빛을 깜박이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의 묘기를 자주 봤다. 그 아름다운 황록색 빛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중국 진나라 때 차윤(車胤)이라는 사람은 기름을 살 돈이 없어 반딧불이를 모아 그 빛으로 밤에 책을 읽었다고 한다. 고사성어 형설지공(螢雪之功)의 형(螢)에 얽힌 이야기다. 차윤은 반딧불이를 전구로 사용한 셈이다. 사람이 만든 전구는 빛을 내지만 열도 발생한다. 백색의 빛 외에도 열을 전달하는 적외선 빛이 함께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딧불이에서는 가시광 파장 영역의 황록색 빛만 나오기 때문에 열이 나지 않는다. 이처럼 생물체가 특정 색의 빛을 내는 것은 생체 내에서 화학반응으로 일어나는 화학발광 때문이다. 이러한 화학발광 과정에서는 열을 내는 적외선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반딧불이와 같은 생물체가 내는 빛을 차가운 빛, 즉 "냉광(冷光)"이라고 한다.


미국의 투프트 트리머 박사는 반딧불이의 몸속에서 루시페린이라는 물질이 루시페라제라는 효소의 도움을 받아 산화되면서 빛을 낸다고 2001년 6월 29일자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루시페린이라는 이름은 "빛을 가져온다"는 의미의 라틴어인 "루시퍼(lucifer)"에서 따왔다. 트리머 박사는 냉광이 나오는 반딧불이 복부의 구조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했다. 복부 표면에는 빛을 내는 발광세포들이 있다. 그 속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발광세포 중심에 루시페린, 루시페라제와 산소가 서로 만나 빛을 발생하는 페록시좀이라는 기관이 있다. 발광세포의 외부로 향한 바깥쪽은 렌즈 모양을 하고 있어 안쪽에서 발생한 빛을 쉽게 밖으로 내보낼 수도 있다. 발광세포 하나하나가 정교한 작은 전구인 셈이다. 반딧불이는 이 작은 전구들을 먹이를 유인하거나 짝짓기할 때 사용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만 해양연구소의 스티븐 해덕 박사는 2005년 7월 8일자 사이언스지에 빛을 내는 촉수를 이용해 먹이를 유인하는 해저생물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생물이 빛에 반응을 전혀 하지 못하는 장님이라는 것이다. 장님생물이 빛으로 먹이를 유인해 잡아먹는다니 생물체의 생존 방식은 참으로 신기하다. 이와 같이 빛을 내는 발광생물 중에는 반딧불이 이외에도 발광박테리아, 발광달팽이, 발광버섯, 빛해파리, 야광충, 반디오징어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현대 도시의 밤은 조명장치의 발달로 화려하게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형광등의 발광효율은 20% 이하로 매우 낮다. 반딧불이의 경우 발광효율은 90% 이상으로 사람이 만든 조명장치에 비해 매우 높다. 그러면 이러한 발광생물들을 이용해 정말 조명등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과학자들은 진나라의 차윤과 같이 발광생물을 이용해 열이 나지 않고 전기가 필요 없는 조명장치를 만들려고 오래전부터 노력해 왔다. 실제로 1935년 프랑스 파리 해양연구소에서 개최된 국제학회에서 연구소의 큰 홀을 "발광박테리아 전구"로 밝힌 적이 있다고 한다. 발광박테리아 한 마리가 내는 빛은 매우 약하지만 작은 유리용기에 엄청난 수를 쉽게 배양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밝기의 전구를 만드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최근 동물의 유전자를 식물의 유전자에 조합시키려는 유전자 조작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유전공학자들은 머지않아 빛을 내는 각종 분재, 정원수, 가로수가 거실이나 정원과 밤거리를 밝혀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예를 들어 발광생물의 발광유전자를 분리해 그 식물들의 유전자 속에 재조합하면 다양한 발광색의 빛을 내는 난초나 가로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장래에 이 기술이 실용화에 성공하게 되면 조명산업뿐만 아니라 도시 환경에도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아름다운 빛을 내는 가로수가 늘어선 밤거리를 가족들과 함께 산책하는 운치 있는 도시의 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콘텐츠담당 : 대외협력팀(T.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