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이드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미디어센터

A multimedia mosaic of moments at GIST

People

양봉렬 대외부총장, 광주매일신문 기고

  • 이석호
  • 등록일 : 2012.09.03
  • 조회수 : 1632

 외교 대통령 DJ를 기리며

 

양봉렬 대외부총장

양봉렬 광주과기원 대외부총장

 
  지난 8월 18일은 김대중 전대통령께서 서거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전후하여 국내외에서 그 분의 업적을 기리면서 애도하는 다양한 추모행사가 개최되었다. 국가부도위기를 초래한 IMF 외환위기의 조기극복,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그리고 남북화해협력시대를 연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노벨평화상 수상, 정보화시대 개막 등이 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으로 회자되고 있는데 필자는 이에 못지 않게 외교분야에서의 업적도 중요하며, 외교를 가장 잘 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3주기를 애도하면서 그분의 외교 철학과 업적을 되돌아 보고자 한다.

 

  첫째,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본적인 외교철학은 실사구시외교와 균형외교로 요약될 수 있다. 실사구시외교는 그의 기본 사상인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구현하는 것으로 국제정세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 그 상황속에서 우리의 현실에 맞는 최선의 국익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균형외교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꿰뚫는 지혜이다. 그는 ‘한국은 4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데 자칫 잘못하면 찢기고 당할 수 있지만, 잘만 하면 색시 하나를 두고 신랑감 넷이 프러포즈를 하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외교다” 고 말하였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71년 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서 당시에는 매우 진취적인 한반도 4대국 보장론을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둘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한 후 그의 외교철학을 구체화한 ‘1동맹 3친선체제’를 공고히 함으로써 역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데 밑거름이 된 외교환경을 조성하였다. 미국과의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당시 클린턴 대통령을 설득, 미국의 대북정책을 햇볕정책의 기조에 따르게 한 것은 DJ 외교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레그 및 레이니 전 주한 미국대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때 한미관계가 가장 좋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주적으로 미국을 가장 잘 활용한 대통령이라고 격찬하였다.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고, 과거 침략에 대한 죄과는 일본의 역사적 양심에 맡기고 미래의 새로운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통해 일본과의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였다. 중국의 강택민 주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형님’이라고 부를 만큼 존경하면서 햇볕정책을 지지하였고 양국관계는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네 차례나 방문하였고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는 러시아와는 국민의 정부 초기에 외교관 맞추방의 앙금이 있었으나, 99년 5월 러시아 국빈방문을 계기로 이를 말끔히 해소하였고, 엘친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흔쾌히 지지하였다.

 

  셋째,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의 평화와 번영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동북아 그리고 더 나아가 동아시아에서의 지역협력체제 구축이 필요하다는 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원대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98년 12월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3(한국, 중국, 일본) 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 협력에 관한 비전그룹(EAVG)‘ 구성을 제안하였고, 2년후에 싱가폴에서 개최된 동일한 회의에서 ’동아시아연구그룹(EASG)의 창설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2005년 첫번째 동아시아정상회의가 마침내 개최되었다. 한·중·일 정상회담이 정례화된 것도 그의 제안에 의한 것이었다.

 

  넷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반독재,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을 위한 투쟁으로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로 불릴 만큼 국제적으로 존경받았다. 그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국제적인 명성으로 우리 외교의 지평은 민주주의와 인권신장분야로 확장되었다. 한 미국의 고위 외교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한국의 국가적 자산(national asset)’이라고 말한 바와 같이 그의 국제정치무대에서의 무게와 리더십은 동티모르 독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1999년 9월 뉴질랜드에서 개최된 APEC정상회의에서 김대중대통령의 주도적 노력으로 동티모르유혈사태가 종식되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후에 동티모르대통령이 된 호세 라모스 오르타 당시 동티모르저항운동협의회부의장이 자기에게 감사한다고 말하자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에게 감사하라’고 했다 한다.

 

  작년 말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으로 북한의 미래가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며, 아시아에서의 미중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고, 남중국해에서 그리고 한중일간의 영토문제, 역사문제 등으로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등을 감안할 때 그 어느 때 보다도 우리는 국제정세에 밝고 외교에 능한 정치지도자가 필요한 시기에 살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3주기를 맞아 그 분의 외교 철학과 업적을 되새기면서 다가오는 12월 대선에서 외교에 밝은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고대해 본다.

 

콘텐츠담당 : 대외협력팀(T.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