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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 특훈교수, 중앙일보 "소프트파워" 기고 - <박근혜의 입, 오바마의 눈>

  • 이석호
  • 등록일 : 2013.04.08
  • 조회수 : 1706

박근혜의 입, 오바마의 눈

 

정진홍 특훈교수


 

  # ‘창조경제’를 둘러싼 논란을 보다 못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입을 열고 나섰다. 지난 3일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에 관해 언급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① 과감한 패러다임의 전환 ②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③상상력과 창의력이 곧 경쟁력 ④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 산업과 산업, 산업과 문화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 ⑤ 융·복합 가로막는 규제 완화와 창의인력 양성 및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등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

 

  #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창조경제’에 관한 언급은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됐지만 여전히 개념정의에 가까워 구체적인 현실 방략의 측면에서는 아쉬웠다. 왠지 열심히 교과서만 공부한 우등생의 답안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은 다음날 국토교통부와 환경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층간소음 문제 해결도 창조경제’라며 이번엔 또 너무 미시적인 수준에서 언급했다. 창조경제가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측면을 강조한 점은 십분 이해되지만 정작 “대통령이 입을 대면 모두 창조경제가 된다”는 식으로 곡해될까 두렵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층간소음 문제 해소 방안을 창조경제와 관련해 언급한 다음날인 5일 오전, 주식 장이 열리자마자 건축용 층간소음 완화재를 생산하는 영보화학의 주가는 초강세를 나타냈다. 전날보다 11.44% 오른 3355원에 거래된 것이다. 이게 작금의 창조경제 생태계의 웃지못할 현주소다.

 

  #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혁신적인 뉴로테크놀러지를 이용한 뇌 연구’, 일명 ‘두뇌 활동지도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1억 달러(약 1110억원)의 예산을 의회에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뇌의 순환 지도를 만들어 뇌세포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밝히는 것으로, 인간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는 인간 지놈 프로젝트에 비견될 만큼 크고 의미 있는 사업이다. 오바마는 지난 2월 의회에서도 “인간 지놈 프로젝트에 투자한 돈은 달러당 140달러의 경제적 효과로 돌아왔다”고 밝히면서 새로운 뇌 프로젝트의 경제효과를 자신 있게 예견했다. 실제로 뇌 프로젝트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수천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아울러 알츠하이머, 간질, 정신적 충격에 의한 뇌 손상 같은 질병을 치료하는 길이 열리고 미래의 먹거리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뇌 프로젝트의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오바마의 과학 자문관들이 추후 따로 구체적인 로드맵을 밝힐 계획이라고 한다. 결국 “양쪽 귀 사이 1.4㎏에 미래 있다”는 오바마의 뇌 프로젝트야말로 손에 잡히는 신성장동력의 미래를 제시한 셈이니 창조경제 구현의 구체적 사례가 아닐까 싶다.

 

  # 사실 그동안 2기 오바마 행정부의 미래성장 전략은 거의 백지상태로 평가되곤 했다. “모기지 사태로 야기된 금융위기 이후 주저앉은 경제를 되살리겠다, 중산층을 복원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이렇다 할 방안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오바마는 차츰 구체적으로 신성장동력을 찾아내 밀어붙이는 자신만의 안목과 과단성을 드러냈다. 지난 2월 말 연두교서에서 3D 프린팅을 통한 제조업 부활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도 그 한 예다. 발표 당시 오바마는 “차세대 제조업 혁명이 미국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3D 프린팅 제조 허브를 늘리겠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3D 프린팅을 통해 제조업의 디지털화를 앞당겨 3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 대통령의 입에 기대어 창조경제를 풀어가는 것은 곤란하다. 창조경제가 구름 잡는 얘기로 그치지 않으려면 전문가들이 나서야 한다. 각계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신성장동력의 근거지로서 창조경제의 정확한 대상과 지점을 샅샅이 훑어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 전모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 이때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토를 다는 입이 아니라 지켜보고 분별하는 안목(眼目)인 것이다. 이제는 그 안목이 곧 리더십인 셈이다.

 

정진홍 논설위원·GIST 다산특훈교수

콘텐츠담당 : 대외협력팀(T.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