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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석좌교수, 세계일보 사이언스리뷰 기고- <과학과 문화는 통한다>

  • 이석호
  • 등록일 : 2013.03.14
  • 조회수 : 1660

과학과 문화는 통한다

 

김희준 지스트 석좌교수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의 3대 목표로 경제 부흥, 국민 행복, 문화 융성을 내걸었다. 경제 부흥과 국민 행복은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오지만 문화 융성은 무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다소 모호하고 그래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대장금이나 싸이 또는 한식 같은 문화상품을 세계 시장에 수출해 한류를 확산하는 것도 문화 융성의 일부일 것이다. 이런 활동은 간접적으로 경제 부흥과 국민 행복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런데 문화를 수출하려면 우선 국내에서 문학이나 예술 등을 육성해 내적 문화 융성을 기해야 한다. 뿌리가 튼튼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 풍요 이끄는 과학의 재발견

 

  현대사회에서는 문화의 융성이 과학의 융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우리는 흔히 과학하면 기술을 떠올리고 그래서 과학의 문명적 측면을 중요시하게 마련이다. 19세기에 발전된 전자기학이 전기의 이용으로 이어져 얼마나 인류의 삶을 바꿔놓았나를 생각해보면 과학이 우리 일상을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해주는 문명적 측면은 너무나 명백하다.

 

  과학은 아울러 우리를 정신적으로 풍성하게 해주는 문화적 측면이 있다. 모든 문화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바탕에는 자연 질서의 아름다움이 자리 잡고 있고, 우리 자신의 궁극적 기원이나 우주에서의 인간 위치와 같은 철학적 질문에 답을 제공하는 것은 과학이기 때문이다.

 

  실은 18세기 후반, 19세기 전반에 걸쳐 산업혁명과 손잡고 과학의 발전이 가속화된 때에는 과학은 문화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인간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는 것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노라’라고 읊었던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에게는 빛을 파장별로 분리하고 분석하는 과학적 접근이 못마땅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과학은 거시세계를 다루는 상대성이론이나 미시세계를 다루는 양자론으로 발전해 우리가 주위에서 매일 경험하는 세상과는 거리가 갈수록 멀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가르치고 배워야 할 내용이 많아지다 보니 이해보다는 암기와 문제풀이 중심의 교육이 돼 과학은 어렵고 따분한 과목이 돼 버렸다. 그러니 과학과 문화의 관련성을 찾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로 비칠 수도 있었다.

 

  우주의 진화를 통해 만물이 만들어진 과정을 파악한 오늘날은 상황이 바뀌었다. 블레이크의 시 ‘무구의 전조’ 첫마디를 보자.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야생 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기 위해, 그대의 손바닥 속에서 무한을, 한 시간 속에 영원을 쥐어라.” 200년 전에도 시인은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야생 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기를 꿈꿨다. 그리고 시인은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그 꿈을 이뤘을지도 모른다.

 

과학·문화 상호융성의 시너지 기대

 

  이제 우리는 과학을 통해 시인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한 알의 모래가 만들어지고 한 송이 야생 꽃이 피어나기 위해 있어야 했던 오랜 시간과 별이 빛나는 천국에서 원소를 만들어내는 사건을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파악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손바닥에 한 알의 모래를 쥐는 것은 137억년의 우주 역사를 끌어안는 것이 된다. 블레이크라면 이런 과학의 발견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나아가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을 키우는 데 적극 활용했을 것 같다.

 

  요즘은 초·중·고교 교육에도 과학을 기술·수학과 아울러 예술과도 접목해 가르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과학의 융성에 문화가 기여하고 문화의 융성에 과학이 기여해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기를 기대한다. 워즈워드가 훗날 과학자들이 별빛의 무지개인 스펙트럼을 조사하다가 우주의 기원을 발견한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놀랄까. 과학은 시에 못지않게 낭만적이지 않은가.

 

 

김희준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화학

 

(세계일보 2013년 3월 14일자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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