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ltimedia mosaic of moments at GIST
별, 나무 그리고 인간
내가 요즘 즐겨 암송하는 시 중에 독일계 미국인인 맥스 어만이 1927년에 쓴 ‘데시데라타(Desiderata)’가 있다. 뒤늦게 세상에 알려져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시의 제목은 ‘간절히 바라는 것들’ 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인데 ‘시끄럽고 분주한 가운데 평온히 나아가며, 침묵 속에 자리 잡은 평화를 기억하라(Go placidly amid the noise and haste, and remember what peace there may be in silence.)’라는 첫 대목부터 ‘모든 가짜, 시시한 일, 부서진 꿈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름답다. 조심해라. 그리고 행복하도록 애써라’라는 마지막 대목까지 삶의 지혜가 넘친다.
유기적으로 얽혀진 우주의 핵심
그런데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내 눈을 번쩍 띄게 한 것은 ‘당신은 나무보다 별보다 못하지 않은 우주의 자식이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분명하지 않을지 몰라도 분명히 우주는 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no doubt the universe is unfolding as it should)’라는 대목이었다. 인간도, 나무도, 별도 모두 우주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돼 나타난 결과라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지구상 생명의 역사에서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식물이 먼저 등장했기 때문이고, 우리와 나무가 존재하는 것은 별에서 탄소, 산소 등의 화학 원소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 시가 발표되고 나서 2년 후인 1929년에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우주 팽창의 단서를 발견했다. 당시 세계 최대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수백만 광년 거리의 약 40개 은하가 모두 멀어져 가고 있었는데,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빨리 멀어지는 것이었다. 이 관찰은 결국 빅뱅우주론으로 이어졌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는 138억년 전 한 점으로 출발해 팽창하면서 현재 우주로 전개돼 왔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우주가 팽창하면서 온도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우리 주위의 만물이 존재할 수 없다. 온도가 아주 높아서 전자가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운동하는 초기 우주에서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중성 원자가 있을 수 없다. 전자가 원자핵에 붙잡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도가 떨어지면 돈이 다 떨어진 탕자가 아버지에게 돌아오듯 음전하를 가진 전자가 양전하를 가진 핵에 끌려 중성 원자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중성 원자가 생겨야 이들이 중력으로 끌려서 별을 만들고, 별의 내부에서 나중에 태양계와 생명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소가 만들어진다.
패배주의 빠져 삶 낭비해선 안돼
나는 가끔 무심코 ‘분명히 우주는 제 방향으로 팽창하고 있다(no doubt the universe is expanding as it should)’라고 읊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웃음을 짓고는 한다. 우주가 팽창하면서 제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았더라면 별도, 나무도, 우리도 있을 수 없을 텐데 이런 우주적 드라마의 구도를 파악한 인간은 나무나 별보다 뒤에 등장했지만 어만의 말대로 나무나 별보다 못하지 않다. 그런데 어만은 어떻게 허블의 발견이 이루어지기 전, 우주의 팽창을 모르면서 우주가 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을지 궁금하다. 실은 우주의 팽창을 파악하고 나서 과학자들은 왜 진작 우주가 팽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까 하고 아쉬워했다. 우주는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에는 가짜가 넘치고, 마지못해 해야 하는 부질없는 일도 많고, 대부분의 꿈은 부서진다. 그럼에도 별과 나무와 시인을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은 아름답다. 그래서 우리는 패배주의에 빠지거나 아까운 인생을 낭비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행복하도록 애써야 한다. 행복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희준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화학 (세계일보 2013년 8월 1일자)